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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반도체 패권 전쟁’ “초격차 확보하려면 정부 역할 중요” 본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인터뷰
미래전략산업에 대한 ‘초격차(압도적인 격차)’를 확보하겠다는 새 정부 국정과제의 핵심은 단연 반도체다.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전 세계 1위로 디스플레이와 함께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한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서 앞으로도 엄청난 성장이 예상돼 초격차 확보는 국가경제의 존망과 직결된다. 미국, 중국, 대만, 유럽, 일본 등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이른바 ‘반도체 패권전쟁’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위원회 자문위원장)는 가장 중요한 건 ‘인력 확보’라고 이야기한다. 국내 반도체 시장에는 매년 1만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실제 배출되는 인력은 650명 선에 그치는 데 대한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특성화대학을 지정하고 입학 즉시 취업으로 연계하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적극 육성하겠단 방침이다.
“국내 대학의 반도체공학과 졸업생이 매년 180명 정도예요. 나머지 인력은 전자전기공학과에서 나온다는 건데 그중 반도체 전공은 20%밖에 안 돼요. 현장엔 반도체 비전공 인력도 많은데 이들은 현장에 바로 투입하기 어려워 재교육에 대한 비용이 들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계약학과와 특성화대학 설립에 공을 들이는 이유예요.”
박재근 교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해 대학 정원을 함부로 늘릴 수 없게 돼 있는데 정부는 반도체학과를 신·증설하고 규제를 풀어 전공자를 늘려야 한다”며 “학부 전공생이 늘어야 일부는 대기업으로, 일부는 중소·중견기업으로 가고 또 나머지는 대학원이나 연구원으로 가는 등 인력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오전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연구 현장을 둘러보던 중 반도체 웨이퍼 샘플을 들어보고 있다. | 한겨레
“비메모리서 대만 따라잡아야 초격차 가능”
공장 설립 등 반도체 생산설비 확대는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대표적인 예로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지방자치단체 인허가와 토지 보상 문제로 지금까지 착공조차 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미국, 대만은 투자 발표 뒤 짧게는 6개월에서 길어도 2년이면 착공에 들어간다. 반도체 기술·생산 강국이 설비 때문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나라는 주민 갈등이 없겠나?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고 공장 부지를 포함한 용수, 전류, 폐수처리 등 지자체가 나서기 어려운 기반시설(인프라) 문제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신속한 처리를 위해 지자체 인허가 절차를 중앙정부와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생산설비는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다.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뉘는데 이중 65%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시장을 거머쥐어야만 글로벌 초격차 확보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선 아직까지 선두를 뒤따라가는 모양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설계(팹리스)와 제작(파운드리)으로 시장이 다시 나뉘는데 파운드리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나라(삼성전자, 점유율 18%)는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사(점유율 60%)와 경쟁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상대로 꼽힌다.
박 교수는 “앞으론 휴대전화에 쓰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와 같은 첨단 시스템 메모리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일단 대만의 기술과 수율(합격품의 비율)을 따라잡아야 하고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한 미국과는 엄청난 격차를 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주도 공급망 재편 “미·중 사이 균형 외교 중요”
5월 20일 우리나라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첫 번째 일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일본 등 동맹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우리 역시 반도체 장비의 45% 이상을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기 때문에 협력은 필수다.
그렇다고 중국과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삼성전자 낸드플래시의 42%, SK하이닉스 D램의 47%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등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중국 의존도가 높다. 게다가 이렇게 생산된 반도체의 60%를 중국이 다시 사 간다.
박 교수는 미국 공급망 재편의 의미에 대해 “설비에 강점을 지닌 미국, 부품·장비를 잘 만드는 일본, 생산을 잘하는 우리나라와 대만이 동맹을 맺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는 1등이 엄청난 이익을, 2등이 조그만 이익을 가져가고 3등은 적자를 보는 시장이에요. 메모리 분야는 지금처럼 1등을 유지하고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대만을 추격하면서 후발 주자들과 기술 격차를 벌려나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3등으로 밀려나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기업은 자신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요. 반도체는 경제이고 안보이며 외교입니다. 반도체 패권전쟁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조윤 기자
[출처: 정책주간지 공감 (https://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qk4DDGJMP000&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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